경증환자 진료 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 무색…"상병코드 변경 지침 통용된 지 오래"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상급종합병원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지만 현장은 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정부 정책 방향대로 경증환자 비율을 줄이기보다는 상병코드를 변경해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환자를 진료할 때 상병코드를 중증으로 변경하는 일은 기존에도 있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경증 외래 환자 비율은 17% 이내로, 경증 입원 환자 비율은 16% 이내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증환자 수 자체를 줄이기보다 상병코드 변경으로 서류상 수치만 줄이는 ‘꼼수’를 쓰는 셈이다.

경증환자의 상병코드를 변경하는 일은 보건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 발표 이후 더 많아졌다는 게 의료 현장의 목소리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은 경증환자에 대해서는 종별가산율 30% 적용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오는 2021년 진행되는 제4기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부터 경증환자 비율 기준이 더 강화됐다. 경증 외래 환자 비율은 17%에서 11% 이내로 낮아지며 그 비율을 4.5%까지 줄이면 가산점을 받는다. 경증 입원 환자 비율은 16%에서 14%로 낮아지며 8.4%까지 줄이면 가산점이 부여된다.

상급종합병원인 A대학병원 한 전공의는 “경증환자 상병코드를 변경하려는 노력은 기존에도 있었다. 중증환자를 많이 보고 경증환자를 적게 봐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단순 감기로 온 환자의 상병코드를 급성기관지염이나 급성 천식으로 변경하는 방식이다. 그런 지침이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경증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을 찾지 않도록 제한하는 방법 없이 병원에만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증환자를 치료한 비용을 제대로 받으려면 상병코드를 바꿀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 방법이 현실적이지 않다”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하려면 환자의 의료이용도 제한해야 한다. 병원이나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 진료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기도병원회가 지난 26일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개최한 정기이사회에서도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상병코드 변경 문제가 거론됐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안유배 의무원장은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했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환자를 종합병원으로 보내라는 건지, 개원가로 보내라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상병코드를 변경해 경증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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