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어린이병원 최은화 원장
"어려운 현장 지키는 후배들에게 희망 줘야"
저평가된 소아 진료 가치 인정해 '정상화'를

소아청소년과 현장이 이상하다. 환자가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의사도 병원도 계속 줄기만 한다. 부모들은 새벽부터 병원 앞에 대기하는데 의사들은 폐과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지난 2020년 74%였던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만인 2023년 25.4%까지 떨어졌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 75%가 소아 응급진료와 입원진료 축소 위기에 빠졌다. 응급실부터 배후 진료 현장까지 모두 마비된 병원들은 "입원을 할 수 없는데 입원을 거부한다"고 오해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울대병원은 '더 이상한' 결정을 했다. 모두가 소청과 위기를 말하고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병원 발전 청사진 첫머리에 어린이병원을 앞세우고 미래의료 핵심 키워드인 디지털 헬스의 구심점으로 삼았다(관련 기사: 서울대병원 'K-디지털 의료' 선언…배곧분원·어린이병원이 핵심).

지금 소아 진료는 서울대병원조차 녹록지 않다. 지난 2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찾은 기자가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시점에 미래를 찾는 이유를 묻자 최은화 원장은 소아 진료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깃발"로서 "누군가는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이상한' 현실을 보고도 계속 소청과 의사로 살겠다는 후배들을 위해서다.

"지금도 소아 진료를 꿈꾸며 의과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새워 아이들 옆을 지키는 후배들이 있다. 계속 꿈꿔도 된다고 해야지 망했으니 그만하라고 해선 안 된다. 소아 진료가 끝났다고 말하기 전에 소아 진료의 진가를 제대로 인정하라고 말할 때다."

그 시작은 성인 진료와 다른 소아 진료만의 고유성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치료에만 초점을 맞춰 예방과 상담, 사후관리를 등한시한 현재 소아 진료 수가를 바로잡고 필수의료로서 소아 진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원 규모를 정확히 평가해 국가가 이를 보전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도 현재 의료 현장과 앞으로의 디지털 헬스에서 '성인 다음'으로 밀려났던 소아 진료의 제 위치를 찾고 의료진이 설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소아감염 분야 전문가인 최 원장은 서울대병원 감염관리 전반에 관여해 왔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감염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대한소아감염학회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소아감염학회(ACPID) 회장이기도 하다.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지난 25일 청년의사와 만나 소아청소년과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력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지난 25일 청년의사와 만나 소아청소년과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력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 이른바 '오픈 런'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소청과 위기가 실감 안 된다는 반응도 있다. 잘 되는 병원은 잘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소청과 진료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단히 일시적인 현상이다. 지금도 적시에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가 너무나 많다. 오픈 런이 가리고 있는 소청과 위기를 직시하고 지금 벌어지는 현상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어떤가. 서울대어린이병원만큼은 문제없다고도 하고, 서울대어린이병원조차 어려울 거라고는 말도 있다.

경영 지표만 보면 매년 200억원대 적자다. 한편으론 많은 병원이 소아 진료를 어려워하는 시기에 독립적인 기능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문제 없다는 말도 맞다. 본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신생아 중환자 수가가 인상돼 적자 폭도 다소 완화됐다.

우리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중환자와 응급환자, 희귀질환자들이 마지막에는 우리 병원을 찾는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최후의 보루다. 아무리 어려워도 버텨내고 소아 진료 분야를 이끌어가자는 각오로 운영하고 있다.

'소청과 망했다'는 말만 외치면 누가 소청과 의사 되나?

- 소청과 위기가 심화하면서 사방에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수년 내 소아 진료가 완전히 몰락한다거나 폐과될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청과의 위기도 맞고 진료 현장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는 후배들이 있다. 그런 후배들에게 '망했다', '끝났다'는 말만 외치면 대체 누가 힘이 나고 누가 소청과 의사가 되고 싶어 하겠나. 정말 잘못된 태도다. 소아 진료로 느낀 보람을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말할 때다. 후배들의 노력이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소아 진료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고평가보다 제대로 평가받는 게 더 중요하다. 소아 진료를 정상화해야 한다. 소아 진료는 성인과 다른 고유한 진료 체계가 필요한데 이해와 고려가 부족했다. 소아 진료는 질병에만 초점을 맞춰선 해결하기 어렵다. 보호자와 상담하며 어린이가 겪는 증상이나 처한 환경을 살피고 질병이 앞으로 성장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소아 진료 분야가 성립하고 수가를 설정할 때 이런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저평가됐다.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인력과 자원 투입 규모도 부족했다. 오로지 질병의 치료만 강조하던 경향이 남긴 폐해다. 여기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 정부가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도입했는데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신생아 중환자 진료 수가로 적자가 해결된 것처럼 사후보상 시범사업으로 수익이나 인력 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본사업에서 국가가 어린이 중증·응급환자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해 반드시 보전해야 할 영역과 투입해야 할 자원 규모를 분명히 할 생각이다. 다만 소청과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가 일부에 그칠까 우려도 있다. 사업 취지는 좋지만 범위가 제한적이다. 적어도 상급종합병원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입원 치료를 하는 병원과 일차 의료기관도 사업 대상에 들어와야 한다.

지역 편차를 줄이고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면 전반적인 수가 정상화도 필수적이다. 출생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차 의료기관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해야 지역 소아 진료 체계를 보호할 수 있다. 지금 개원가는 결코 '잘 되는 병원은 잘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

소아 진료는 '나머지'도 '나중에'도 아니다

-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미래 병원 청사진 첫선에 어린이병원을 내세우면서 디지털 헬스 도입을 강조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이 소아 진료에서 디지털 헬스를 강조한 이유는?

앞으로 의료와 디지털 헬스는 구분 짓기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어린이는 디지털 헬스에서 여전히 나머지로 분류된다. 인구는 줄고 수요는 적고 시장성은 없는데 고려해야 할 것은 많으니까 시작도 안 한다. 늘 어른 먼저 해 보고 아이들은 나중에 하겠다고 한다. 막상 우리 아이들에게 해보려고 하면 이미 낙후된 정보와 뒤떨어진 기술인지 오래다. 디지털 헬스에서 소아 진료를 하는 의료진이 설 자리도 없었다. 서울대병원의 미래 어린이병원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장의 디지털 헬스를 소아 진료 현장에 도입하겠다.

- 지금 추진하거나 구상 중인 디지털화 사업이 있나.

보호자 대상으로 가장 먼저 디지털화가 필요한 분야를 물었더니 입원 치료 중에 서류 처리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부분을 디지털화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병원도 병상과 외래 관리 능률이 오를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입원 치료 전에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병원 생활을 미리 체험하는 시스템도 개발할 계획이다. 영상 촬영이나 검사가 생소하고 의료진이 낯설어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어린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있다. 아이들이 안정되면 의료진도 혈압이나 심장 박동 같은 활력징후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최 원장은 성인을 중심으로 한 진료 현장에서 저평가된 소아 진료의 고유성과 특수성이 제대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최 원장은 성인을 중심으로 한 진료 현장에서 저평가된 소아 진료의 고유성과 특수성이 제대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위기 속에서도 희망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병원장으로서 불안에 빠진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준다면.

아이들은 내가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아픈지 표현할 수 없다. 부모의 관찰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찰이나 판단이 언제나 정확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물론 부모도 불안하고 힘들다. 바로 이 점까지 고려하는 게 소아 진료다. 물론 의료 체계가 늘 100%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의사의 진료와 상담이 부모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소아 진료 현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손으로 살려낸 아이가 무사히 자란다는 기쁨은 정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보람과 감동으로 일한다. 지금도 젊은 전공의들이 밤을 새우며 아이들 옆을 지키고 있다. 이런 노력을 조금만 더 알아주면 좋겠다. 소아 진료를 무작정 우대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그 가치에 걸맞게 대우할 때다.

- 마지막으로 소아 진료 현장을 지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남겨달라.

소아 진료가 참 고달프다. 몸은 힘들고 아픈 아이를 보며 눈물지을 일도 많다. 그러다가도 내 눈앞의 아이를 꼭 살려내겠다고 마음 다잡는 게 소청과 의사다. 스스로 선택이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 때문에 끝내 소아 진료 현장을 떠나더라도 그 마음만은 부디 가슴 깊이 간직하길 바란다.

선배로서는 바로 그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소아 진료 현장을 되살리는 데 힘쓰겠다. 현장을 지키는 여러분의 노력이 인정받도록 하겠다. 소아 진료를 꿈꾸는 이 누구나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서울대어린이병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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