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법무법인 반우 장덕규 변호사
"지금 현지조사·처분 적법하다고 할 수 있나"
처분 위법성 줄여 정책 변화로 이어갈 것

법정에서 드라마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질 거라고 예상한 재판은 대개 "예상대로 진다". 의료 분야 행정 소송은 더 그렇다. 상대는 보건당국이고 수십 년간 판례와 논리로 쌓은 벽은 단단하다. 아무리 면허가 "의사에게 목숨 같아도" 그만큼 목숨 걸고 싸워주는 변호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보호한다"는 공익으로 무장한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정부 기관을 상대로 "그건 공익도 아니고 적법하지도 않다"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되기를 자처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상대편에 앉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혀를 내두르던 공단 변호사는 이제 그들 옆 책상으로 출근한다.

법무법인 반우 장덕규 변호사 이야기다. 공단에서 9년 경력을 마무리하고 지난 1월부터 반우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고 있다.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차이도 몰랐던 신참 변호사 시절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역전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청년의사와 만난 그는 변호사로서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앞으로 해결할 사건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지금 공단의 거름망은 너무 성기다. 수사에서 걸러내고 재판에서 걸러내겠다고 하지만 조사받는 입장에서는 그 성긴 구멍 사이로 그대로 휩쓸려 내려가는 셈이다. 더 촘촘하고 치밀한 논리로 그 구멍을 메우고 위기에 처한 이들의 안전망이 되겠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떠난 법무법인 반우 장덕규 변호사는 최근 청년의사를 만나 행정조사와 처분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요양기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청년의사).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떠난 법무법인 반우 장덕규 변호사는 최근 청년의사를 만나 행정조사와 처분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요양기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청년의사).

- 공단을 떠나 반우에서 일한 지 반년이 됐다. 그간 가장 큰 변화는?

시야가 바뀌었다. 공단에서 일할 때는 모든 현지조사가 당연했다. 현지조사를 못 하면 행정청이 일을 못하니까. 그런데 자꾸 현지조사가 위법하게 이뤄졌다는 반박이 들어왔다. 그럼 우리는 공익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이제 공단을 나와 실제 현장을 보니까 간극이 정말 크다.

- 실제로 보니 공단의 현지조사가 위법하게 이뤄진다는 뜻인가.

결과 보고서만 보면 위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출 서류를 보면 다 동의하고 도장 찍은 문서들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에서 도장 찍으라고 할 때 안 할 수 있는 의사는 거의 없다. 국가기관이 가진 권한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반면 이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생각 이상으로 작다. 이런 구도 속에 적법 절차가 구성된다. 직접 겪으니 적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원칙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됐다.

- 공단 업무가 진정으로 공익에 부합하고 적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요양기관 권리 보장을 위한 억제 장치가 더 필요하다. 공권력과 국민이 마주할 때는 최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맞는 방향이다. 지난 역사에서 배운 점이다. 수사기관이 범죄자를 체포해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 법정에 세워 처벌한다고 치자. 범죄자를 처벌한다고 문장 앞뒤만 이으면 공익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식으로 진행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 제안하고픈 현지조사 대응법이 있다면.

무엇보다 현지조사 진행 과정부터 법률적 조력을 받길 권한다. 법률적 리스크는 발생하는 순간 최대한 빠르게 솔루션 확보에 나서야 피해도 적다. 현재로서 요양기관이 현지조사를 회피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렵다. 복지부 조사라면 거부하는 순간 업무정지 처분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현지조사 과정부터 법률적 도움을 받으면 우선 현지조사 규모나 진행 과정에 질 수 있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행정 처분 이전에 위법성이나 부당함을 선제적으로 피력하는 것도 가능하다. 처분이 나오더라도 즉시 집행정지를 걸고 본안을 다툴 수 있다.

- 변호사로서 소송을 더 강조할 줄 알았다.

소송은 싸워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그사이 입는 피해는 소송에서 이겨도 돌아오지 않는다. 소송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몇 달, 몇 년이 걸린다. 그사이 지급 보류로 폐업하는 기관들도 많다. 고의 과실이 아니라 국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정말 지난하고 상처 가득한 싸움이다.

- 병 더 키우기 전에 빨리 병원 찾아오라는 말처럼 들린다.

맞다. 의외로 '나는 잘 운영했으니까 별일 없다'는 요양기관장들이 많다. 요양급여는 정말 복잡하다. 부당청구는 일단 걸면 나온다. 나는 잘 운영했는데 정작 직원이 인센티브를 받거나 허위 환자를 등록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는 괜찮다'는 생각에 법률적 조력을 받는 시점을 늦추면 늦출수록 리스크는 커진다.

- 공단에서 경력도 법률적 조력을 희망하는 의료기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의료 분야 행정소송은 결국 면허에 관한 문제고 보건과 행정 두 분야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 공단에서 일할 때 늘 요양급여가 어떤 경우에 삭감되고 환수되는지, 업무정지 수준은 어느 정도로 할지 고민하며 일해 왔다. 그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효율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겠다.

-공단 재직 당시 사무장병원 관련 중요 판결을 이끌어낸 적이 있다. 사무장병원이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재판 과정에서 뒤집은 유일한 변호사였다. 공단을 나온 뒤로 사무장병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었나.

환자의 건강에 전혀 관심 없고 오직 공장처럼 수익만 뽑아내려는 사무장병원은 당연히 지양하고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사무장병원을 가르는 경계가 너무 모호하다. 예를 들어 의료법인의 의료기관 연간 수익이 1억원 가운데 비의료인인 이사장이 연봉으로 9,000만원을 가져가면 사무장병원이 된다. 반대로 1,000만원만 가져가면 사무장병원이 아닌 셈이다.

보건당국이 의료기관에 사무장병원 판단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순간 시장 개입이나 규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기관 내부라도 명확한 기준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당국이 지금까지 그런 노력을 했느냐 하면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 이쯤 되면 공단의 저격수라 불릴 법한데.

과분한 호칭이다. 저격을 하려면 조준부터 해야 하는데 아직 탄피만 채우고 있다. 우선은 워치독, 감시자 역할부터 제대로 해내겠다. 공단 처분의 위법성을 계속 지적해 시정을 이끌어 내고 피해를 줄여나가겠다. 시정 사례가 모이면 정책이 바뀌고 정책을 고치면 그 과정에서 신뢰가 높아진다. 공단을 비롯해 보건당국이 국민에게 더 신뢰받은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공단을 떠나 철저한 감시자가 되겠다고 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느껴진다.

그간 쌓은 애정도 있고 쌓인 애환도 많다. 심평원이 원주시의 등대 소리를 듣는데 공단이 거기 있었으면 등대는 공단이 됐을 것이다(웃음). 공단 내부는 고민도 많고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선'이라는 것이 어디에 '선'을 긋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선'을 제대로 그었는지는 밖에서, 멀리서 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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