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자리의원 노동훈 원장(대한비뇨의학회 홍보위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갖 악취가 난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홀아비 냄새, 바닥에 놓인 상한 음식물 냄새, 화장실 냄새 등.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 표정을 숨길 수 있지만, 이마가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64년생이니 만 59세 용띠 남성이다. 방바닥엔 소주병과 담배꽁초, 휴대용 버너와 불에 탄 신문지가 보인다. 바닥과 공중에 벌레도 보인다. 남자는 앉으라 하는데 바닥은 찐득하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노동훈 편한자리의원장
노동훈 편한자리의원장

나누리 푸드뱅크 김용호 목사에게 들은 바로 남자는 통증으로 수년 째 잠 못 이루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고 한다. 목사님은 남자에게 의사가 왔으니 불편한 것을 말하라 한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 반찬이나 가져올 것이지 의사는 왜 왔냐고 한다. 남자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이럴 때는 묵묵히 들어야 한다. 남자의 말을 들은 후 약으로 통증을 조절해 드리고, 금주를 확인하면 수면제 등을 처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의정부 우리밥집 정영일 목사는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 있다. 가정사가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사는 20대 남자다. 그는 지워진 삶의 무게가 무거워 6층에서 뛰어 내렸고 양쪽 무릎 아래 뼈가 으스러져 하지 절단 장애가 생겼다. 남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정영일 목사는 양아들로 입양해 휠체어 육상 등으로 재기를 돕고 있다. 젊고 건강한 남자지만 여름철 감기에 걸렸다. 병의원을 가려면 장애인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하면서 한 달간 만난 이웃의 모습이다. 몸이 불편해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외부 왕래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간다. 아프면 병의원을 방문해 치료 받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지만, 그들에게는 멀고 힘든 길이다. 왕진을 마치고 나올 때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가 떠난 후 다시 아프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다. 방문진료 대상자 중 자가용 혹은 택시로 이동 가능한 분들도 있지만,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분들도 있다. 왕복 교통비에 반나절 이상의 시간과 보호자의 수고 그리고 환자의 불편함을 고려하니,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범사업이라 홍보가 어렵고, 방문진료가 필요한 분들도 어느 기관에, 어떤 절차로 신청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처방전 혹은 약을 전달하는 것과 본인부담금 문제도 풀어야 한다. 진료 현장에서 처방 후 비용을 확인하는 방법과 일본의 약 배송 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 10번 방문진료 하면 9번은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나머지 한 건은 비싸다고 한다. 특히 기초생활 수급자는 그렇다. 6,000원에서 1만원 초반의 본인부담금이지만, 평소 병의원을 이용할 때 무료거나 1,000~2,000원 정도의 본인부담금만 납부했기 때문이다.

일차의료 시범사업 중이니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면 개선점도 보일 것이다. 사례를 수집하고 표준화해서 널리 보급한다면, 의료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될 것이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왕진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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