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 ZERO 한국②] 질병청 일몰성 검진사업 제안
'재정 부담' 지적에 대안 놓고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세계보건기구(WHO)가 바이러스 간염 퇴치를 천명하며 2030년까지 전세계 B형 및 C형 간염의 신규 감염을 90% 줄이고, 바이러스 간염으로 인한 사망을 65%까지 감소시킨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최초로 이를 위한 로드맵을 공식 발표해 주목된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로드맵에는 대한간학회가 10년 가까이 주장해 온 C형간염 선별검사의 국가검진 도입 등도 포함됐다. C형간염 국가건강검진 도입은 현재 보건복지부 국가건강검진위원회 검토를 앞두고 있다. 이에 본지는 2회에 걸쳐 질병청이 발표한 바이러스성 간염 관리 로드맵의 구체적인 내용과 향후 C형간염 국가건강검진 도입에 예상되는 장애 요인 및 대응 방안을 살펴봤다.

질병청, C형간염 국가건강검진 도입안 제출...공은 복지부로

질병관리청은 지난 21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간학회 컨퍼런스(이하 'APASL STC 2023') 정책 세션에서 5년 또는 6년이란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40~65세 전국민을 대상으로 평생 1회 C형간염 항체검사를 시행하는 '일몰성' 검진사업을 제안했다.

해당 안은 현재 질병청 검토를 마치고 복지부에 제출된 상태로, 국가건강검진위원회 전 단계인 전문분과위원회 검토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초 9월 말로 예정돼 있던 전문분과위원회 회의는 국정감사 등 여러 일정으로 인해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다.

질병관리청 감염관리과 양진선 과장은 이날 "C형간염 국가건강검진 도입이 정해진 절차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건보재정 상태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C형간염 검진 항목 도입시 건보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양 과장은 비용 절감을 위한 복안 마련을 간학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양 과장은 "질병청에서 제시한 안대로 C형간염 검진사업을 진행하면 5년간 약 900억원이 소요된다"며 "한 해 180억원 정도가 드는 것인데,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재정 평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검진 항목 조정 없이 C형간염이 검진 항목에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양 과장은 C형간염 항체검사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반검사'를 선택할 가능성과 재정 문제로 C형간염 검진이 반대에 부딪힐 경우 질병청이 제안할 수 있는 대안 등에 대해 논의해 달라고 학회에 제안했다.

일례로 C형간염 검진을 하는 5년 동안 B형간염 검사 항목을 제외한다거나, AST나 ALT와 같은 간 관련 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지 등을 물은 것이다.

양 과장은 "최근 진행된 한 심포지움에서 여러 교수들이 '간기능 검사(GOT/GPT)가 특정 질병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데, 검진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할 필요가 있겠냐'고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며 "이런 부분들에 대해 미리 논의를 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별재정 투입, 원안대로" VS "B형간염 항체검사 대체 가능"

이에 대해 이날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의 생각은 둘로 갈렸다. '특별재정 투입과 검진기간 조정을 통해서라도 원안대로 가야한다'는 의견과 '반드시 대체할 항목을 꼽아야 한다면, B형간염 항체검사가 괜찮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먼저 전북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창훈 교수는 한시적이라도 다른 검진 항목을 대체하는 것에 대해 "40~65세 중 역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인희 교수는 "우리나라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들도 C형간염 퇴치를 위한 특별재정을 투입해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다른 검진 항목을 빼려고 하는 것은 혼란만 불러올 뿐"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또한 C형간염 항체검사를 일반검사로만 하게 되면 의료기관들의 참여율이나 협조율이 떨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인희 교수는 "정 예산이 한정돼 힘들다면, 고육지책으로 기간을 늘려서 연간 재정 부담을 완화시키는 것도 한 방안"이라며 "그렇게 해서라도 일단 빠르게 C형간염 검진을 시작하고, 추후 재정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검진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향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피력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 역시 "기존에 있던 항목을 건들지 않고, 특별재정을 투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며 "이렇게 한시적으로 한꺼번에 검진이 이뤄질 경우 관련 업체와 협의해 C형간염 항체검사의 단가를 낮추는 방법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진단된 환자에서 치료 연계가 굉장히 중요한데, 직접작용제(Direct acting antivirals, DAA)의 가격도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추후 건보재정에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며 "이 역시 정부가 제약사와의 협상을 통해 약가를 낮추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최광현 교수는 "굳이 대체 항목을 제시해야 한다면, 어차피 예방백신 접종도 대부분 하고 있으니 40세 이상에서 한시적으로 B형간염 표면항체검사(HBsAb)를 빼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며 "또한 감마 GTP가 있기 때문에, AST 역시 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준용 교수 역시 B형간염 항체검사 대체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AST, ALT, 감마 GTP 등 간기능 검사는 대체 대상으로 고려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장영 교수도 "B형간염의 경우 주산기감염 예방사업을 통해 유병률이 낮아지고 있고, 병무청 검사 등 중복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B형간염 항체검사 대체안에 동의했다. 이어 "앞서 간기능 검사가 질환을 특정할 수 없다고 언급했는데, AST나 ALT가 상승돼 있을 때 여러 가지 질환 가능성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간기능 검사를 빼는 건 우선순위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중석에 있던 국립암센타 기모란 교수는 "이제는 B형간염 검진 효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때"라며 한 발 더 나아갔다.

기 교수는 "B형간염 검사는 인지도도 높고, 굉장히 많은 검사의 기회가 있다"면서 "신검도 있지만 하다못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때나 수술 시에도 검사하고, 요즘에는 B형간염 예방접종을 하고 항체가 생겼는지 여부를 아기 때부터 검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B형간염 백신이 도입된 지 거의 30년 가까이 되기 때문에, 40세 이상에서 B형간염 검진으로 새롭게 진단을 받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효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 교수는 "B형간염과 달리 C형감염은 RNA 확진만 받으면 모두가 치료 대상이 되고, 또 치료를 통해 지속바이러스반응(sustained virological response, SVR)을 달성하게 되면 더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곧 예방'"이라며 "지금 당장 검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B형간염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하지만 C형간염은 8주만 약을 먹으면 완치될 수 있어, 이런 점을 알면 누구라도 검사를 해볼 의향이 생길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C형간염 검사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질병청이 홍보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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