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연구위원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 원인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찾는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다며 이를 근거로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하고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한다. 이런 정부 방침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조병욱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조병욱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의료계는 이전부터 의사 수가 아니라 배치 문제라고 말해 왔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은 의사가 없는데 개원의만 많은 것이 문제다. 그러나 의료계 지적에도 보건복지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은 "직접적인 데이터를 제시해 달라"는 반응이었다.

OECD 통계는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들이 정한 답을 내세우기 위해 필요한 수치만 가져왔을 뿐이며 사실 대한민국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통계를 보면 오히려 대한민국이 기형적인 구조에서도 높은 의료 수준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OECD 통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적은 의사로 어떻게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는지 확인하고자 한다.나아가 무엇이 진짜 문제고 이를 바로잡을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논하겠다.

OECD 공식 홈페이지의 'OECDiLibrary' 서비스 중 'OECD Health Statistics'에서 제공하는 'Health care resources DATA'를 Raw DATA로 삼아 분석했다. 보건의료체계가 코로나19 영향을 받기 전인 202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통계 수치가 없는 국가는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2020년을 기준으로 OECD 평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6명이다. 한국은 2.51명이다. 한국 의사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상당히 적다. 보건복지부 주장도 이 수치를 근거로 한다.

인구 1,000명당 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2.17명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낮지만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감안하면 큰 편차는 보이지 않는다.

인구 1,000명당 병원 외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1.52명이다. 한국은 평균보다 낮지만 앞서 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보다는 편차가 적은 편이다.

의사가 근무하는 의료기관 분포를 보면 한국은 현재 병원과 병원외 의료기관(의원·보건행정기관)에 종사하는 비율이 50대 50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에 비해 병원 외 의료기관 즉 개원가에 근무하는 의사 수는 빠르게 늘어나 2020년 이후 분포비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구 100만명당 병원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29.97개소다. 한국은 약 2.6배에 이를 정도로 병원이 많다. 2위 그룹 국가들보다도 2배 이상 많다. 그만큼 의료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 1,000명당 병상(Bed)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4.74개다. 병원 수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평균보다 약 2.6배 더 많은 병상을 보유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의료 공급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당 고용된 의사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90.93명이다. 병원 1개소당 의사 90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16.03명이다. 하위 국가의 절반도 못미치는 인원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 1인당 담당 병상 수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은 1인당 2.18개 병상이다. 반면 한국은 9.96개다. 한국 의사는 약 4.5배 더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 100만명당 치료가능 사망률(Treatable mortality)

치료가능 사망률은 시기적절하고 효과적인 의료개입으로 피할 수 있는 사망을 뜻한다. 즉 어떤 질병이 발생했을 때 보건의료 시스템이 구할 수 있는 사망을 말한다. 수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의료 수준은 높다고 판단 가능하다. 한국은 43명을 기록해 스위스(39명)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보다 14명 낮은 수치다.

전체 데이터 Table

OECD를 기준으로 두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의사 인력은 늘 적었다. 인구 5,000만명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가 단 몇 십년 만에 근대화와 현대화를 이룩했고 그 과정에서 극도의 효율화를 추구하며 적은 숫자로 큰 능력치를 발휘하도록 시스템화됐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밑바탕으로서 보건의료 수준을 급격히 끌어올리기 위해 전문의 위주 양성 시스템을 갖췄고 질적 성장과 함께 고강도 근로 환경을 감당하며 양적 성장까지 이뤘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고 지방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며 병상 확대와 병원 증설은 그 한계를 맞았으며 병원 고용은 정체기에 빠졌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병원당 고용된 의사 수다.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의료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특히 현대 의료는 전문 분야 세분화가 심해지면서 더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외과만 해도 위·간·담·췌장·소장·대장·혈관·이식 등 분과가 많다.

물론 병원마다 기능에 맞는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했다고 갈음할 수도 있으나 그간 한국 의사들은 고효율 업무에 적응해 왔다. 병원당 고용된 의사 수(16.03명)에 놀랐다가도 의사 1인당 담당 병상 수(9.96개)를 보면 10병상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고 납득하는 전문의가 대다수일 것이다.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 미치니 적정성을 확보하고자 인력을 늘린다면 병원의 고용도 그에 수반해 늘어야 한다. 지표가 보여주듯이 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와 OECD 평균 사이 간극은 그렇지 않은 의사 수보다 더 크다. 정부는 과연 이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의사가 아닌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통계 지표를 봐도 의사 인력 증원 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거리에는 메디컬 빌딩이 즐비하고 전문과별로 의원이 들어서 있다. 전문의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병원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 통계 지표에서 보이듯 고용된 의사가 적기 때문이다. '빅5'이나 대학병원처럼 수련병원에 가야 가운 입고 뛰어다니는 의사를 볼 수 있다. 담당 의사 1명이 입원 환자 10명을 관리하면서 수술도 하고 검사도 하고 외래 진료도 봐야 한다. 외래는 '3분 진료'를 해야 예약 환자를 겨우 소화하고 당일 환자는 밀리고 밀려 진료한다. 환자 1명에게 할애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높은 인건비 때문에 고용을 키울 수 없으니 인력을 늘려 인건비를 낮추면 고용도 더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병원 의사 업무는 중소기업 근무자와 같다. 아무리 실업률이 높아도 중소기업 취업률은 올라가지 않는다. 중소기업을 대기업 같은 근무 여건으로 만들어야 취업률이 높아진다.

대한민국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로는 인구 100만명당 치료가능 사망률을 제시하겠다. 가장 "직접적인 수치"다. 국가 의료시스템이 치료 가능한 사망자 숫자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낮다. 정말 의사 수 부족이 문제라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보다 치료가능 사망률이 높았어야 한다.

능력과 희생 정신으로 효율화를 이뤄 적은 숫자를 극복한 게 대한민국 의사다.

다음에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 영역에서 병원이 고용하는 의사 수 통계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민간에 의존하며 그 책임을 미뤄왔는지 알아보겠다.

(OECD 통계는 정부가 제출한 자료로 만든다. 정부로서 모를 리 없는 데이터다. 그런데도 "데이터를 제시해 달라"고 하니 애초부터 들을 생각이 없다는 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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