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연구위원

12세 환자가 A병원 응급실에 들어온다. 주 증상은 복통.

A병원 소아응급진료가 불가 → 진료 가능한 B 병원으로 전원 → B병원 도착 → 진료 시작.

복부 증상이 심상치 않다. 혈액검사 및 수액라인을 확보하고 응급 초음파검사나 복부 CT 검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초음파 검사나 소아 복부 CT를 판독해줄 영상의학과 의사가 없다.

조병욱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조병욱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B병원 의료진은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일일이 연락하여 찾아내 C병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후 C병원으로 전원 → C병원 도착 → 진료 시작 → 앞서 B병원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응급초음파 검사 실시 → 급성충수돌기염 진단 → 응급수술 필요.

그러나 만 12세 소아환자 급성충수돌기염 수술을 할 소아외과 의사가 없다. 지역 내 A병원에는 있다. C병원 의료진이 A병원 외과 의료진에 직접 연락해 응급수술 가능여부를 확인하고 전원 허락을 받는다. 이후 A병원으로 전원 → 다시 A병원 도착 → 응급실 접수 직후 사전에 연락된 외과 의료진에 인계되어 응급 수술 시행.

환자 입장에서는 ‘응급실 뺑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은 병원 간 협조를 통한 전원일 뿐이다. 즉,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여러 병원이 합심해 협조를 한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소아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장중첩증 환아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 3곳에 연락을 취해 진단, 정복술, 정복술 실패로 인한 개복수술까지 하는 응급 전원 체계를 가동한 적이 있었다.

정부는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지역별로 권역화, 센터화를 통해 질환이나 치료에 대한 특정 병원 지정을 추구해 왔다. 결국 지정된 병원은 맡게 된 분야에만 중점적으로 인력과 장비를 구축하게 되고 이러한 특성화는 각 병원별 차이를 가져오게 됐다.

그로 인해 환자가 미리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하게 된 것이다. 응급실처럼 급박한 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 환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가 무엇인지 충분한 정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119가 이송해 주는 곳 아니면 가까운 곳, 그것도 아니면 가장 큰 상급종합병원을 찾게 된다.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온갖 경증환자들이 가득 차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병원 간 전원 조치가 늘어나게 만든 원인은 바로 정부에 있다.

기존 의료전달체계가 아무리 유명무실하게 되어 실효가 없다하더라도 응급의료만큼은 강제적으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역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센터 순으로 전달체계를 지킬 수 있도록 응급의료이용에 장벽을 세웠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가 무엇인지 의료진이 결정하고, 그것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최우선으로 선정해 이송하는 유기적인 응급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하다.

만일 저 환자의 경우 응급의료전달체계가 이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어땠을까. 지역응급의료기관 방문 → 진찰 후 충수돌기염 의심 → 검사 및 수술 가능한 지역응급의료센터 및 상급 응급의료기관 검색 후 전원 → 상급응급의료기관에서 진단 후 수술.

지금의 응급의료체계는 환자가 운이 좋게 C병원에 들어가서 가장 짧은 동선으로 응급의료가 제공되기를 기대하고, 아니면 환자가 A병원에서 소아환자를 무조건 받아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환자가 느끼는 응급실 뺑뺑이는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응급의료체계가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가 병원을 옮겨 다니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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