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 上편
“현 상황서 2차로 엔허투 쓸 수 있는 환자 많지 않아”
“장기 생존 효과 고려한 선택적 급여 방식 고민 필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항암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과 위암 치료에 혁신을 가져왔다. 특히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기존 2차 치료제였던 로슈의 ‘캐싸일라(성분명 트라스투주맙엠탄신, 이하 T-DM1)’와 치료 효과를 비교한 ‘DESTINY-Breast03’ 3상 임상시험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를 보였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5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DESTINY-Breast03’ 3상에는 국내 의료기관 7곳에서 총 84명의 환자가 참여했다. 다만 이러한 국내 연구진과 환자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아직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 접근성에는 여전히 제한이 있는 상황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를 만나 'DESTINY-Breast03' 3상 임상 연구의 의미와 엔허투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가져올 변화, 그리고 고가 신약 급여화 결정을 앞둔 정부와 환자 간의 해법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

임석아 교수는 현재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ESMO 임상 진료지침 위원회(Clinical Practice Guidelines committee)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대한암학회 국제위원회 위원장, 대한종양내과학회 학술위원장, TRIO(Translational Research In Oncology) 이사 등 항암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임 교수는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Clarivate)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 HCR)’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엔허투 급여 승인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연달아 5만명을 넘기는 등 환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국내 환자들이 참가하기도 한 DESTINY-Breast03 3상 결과에 비춰볼 때 엔허투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나.

‘DESTINY-Breast03’ 임상 연구는 2차 표준 치료제인 T-DM1 대비 엔허투가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직접 비교하는 대규모 3상이었다. 해당 임상에서 엔허투는 T-DM1 대비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을 T-DM1 6.8개월 대비 28.8개월로 연장했는데, 수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다. 이처럼 mPFS를 4배 이상 연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DESTINY-Breast03’ 임상의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에 참가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화상회의를 하면서도 ‘DESTINY-Breast03’의 첫 데이터가 나왔을 당시 위험비(HR) 0.28이라는 수치에 모두 너무 감동해서 어떤 분들은 박수를 치고,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이성 유방암 2차 치료에서 이 정도 수치의 HR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모두가 감사해했다. 지금까지 전이성 유방암에서 HR는 0.7 정도만 나와도 의미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0.28이라는 수치는 정말 엄청난 결과였다.

그리고 12개월 시점 무진행생존율(12-Mo PFS)도 상당히 차이가 나는데, 엔허투의 경우 75.8%이고 T-DM1은 34.1% 정도이다. 이는 치료 시작 후 1년 동안 질병이 진행하지 않고 유지되는 환자가 T-DM1은 3명 중 1명이라면, 엔허투는 4명 중 3명이라는 의미다.

기존에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들은 2차 치료를 시작한 후 6개월에서 9개월 정도면 암이 다시 진행되기 시작해 3차 치료로 넘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엔허투는 현재 2년 이상 치료를 지속하는 환자가 50%를 넘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또 엔허투는 대부분의 환자에서 종양의 크기가 30% 이상 감소하는 부분 반응(PR)을 보였고, 첫 투약 후 질병 진행률(PD) 역시 5% 미만으로 나타났다.

- 아직 엔허투는 급여 등재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임상 현장에서 엔허투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DESTINY-Breast03 이전에 ‘DESTINY-Breast01’이라고 하는 1상이 있었다. 여러 가지 표준 치료에 실패한 HER2 양성 환자들이 대상이었고, 여러 암종 코호트 중 유방암이 포함돼 있었는데 mPFS가 19.4개월 정도였다.

현재 엔허투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DESTINY-Breast03처럼 2차 치료에 사용하고 있는 분들은 드물고, DESTINY-Breast01처럼 여러 치료법을 시도해본 후 더 이상 다른 치료제가 없을 때 엔허투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조금 더 많다.

엔허투가 ‘카페시타빈+트라스투주맙’ 또는 ‘카페시타빈+라파티닙’ 병용 요법 대비 3차 치료에서 효과를 보인 ‘DESTINY-Breast02’ 2상 데이터도 있었기 때문에, 우선 보험이 되는 T-DM1을 사용하고 엔허투는 언젠가 보험이 되면 3차로 사용하려는 환자들도 꽤 많다.

현재 급여가 안 되는 상황에서 2차 치료로 바로 엔허투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 언제 보험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기간으로 투약하게 되면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엔허투가 급여가 된다면 2차 치료로 T-DM1 보다 효과가 좋은 엔허투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물론 언젠가 보험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작년 말부터 2차 치료로 엔허투를 사용하는 환자들도 일부 있고, 이미 보험이 되는 다른 치료에 모두 실패를 해서 엔허투를 살아생전 꼭 한번 맞아 보고 싶다 하는 환자들도 많다.

- 엔허투를 처방할 때 고려해야 할 점도 있나.

10% 내외 환자에서 간질성 폐질환(ILD) 부작용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현재 국내에서는 환자가 엔허투를 사용하고 간질성 폐질환으로 사망한 사례는 없다. 국내 의료진들이 수많은 임상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잠시 투약을 중단하고 적절히 관리를 해서 다시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대처를 잘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존에 간질성 폐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는 환자에게는 엔허투를 추천하기 어려울 수 있다.

- 올해 첫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엔허투에 대해 재심의 결정이 나왔고, 오는 2월 1일 제2차 약평위가 열릴 예정이다. 의료진 입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졌으면 하는지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오래 전에 설정된 ‘암 환자 본인부담율 5%’라는 기준이 최근 신약들의 급여를 더욱 지연시키고 있는 측면도 있다. 환자 생존기간을 개선한 좋은 치료제일수록 투약 기간이 길어지고, 투약 기간이 늘어나면 재정 부담 역시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선뜻 급여를 적용하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예를 들어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정부가 70% 환자가 30% 정도를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선택적 급여 방식을 먼저 적용해 빠르게 급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이후 일부 약제는 현행 제도와 같이 환자 본인부담율을 5%로 낮추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한다면 지금 보다 급여 진입 장벽이 낮춰져 폭 넓은 급여 적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의 기준에 맞춰 급여를 적용하려 하다 보면 너무 오랜 기간 환자들이 급여를 기다리게 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5% 이상의 본인 부담금을 부담하더라도 글로벌 스탠다드(표준 치료제)를 조기에 급여화 하는 것이 치료 접근성 개선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글로벌 표준 치료제가 국내 보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 국내 의료진이 향후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데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3상의 경우 반드시 표준 치료제와 신약을 비교하는 연구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표준 치료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표준 치료법이 된 약제에 대한 급여화가 필요하다.

- 뛰어난 효과를 지닌 신약이 새롭게 등장했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유방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환자와 의료진이 같은 배를 탄 하나의 팀이라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와 암의 유형을 고려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제를 말씀드린다. 이때 환자가 의료진과 충분히 소통해야만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선택할 수 있다.

허투(HER2) 양성 유방암에서는 면역항암제를 추가로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가 아직 없다. 그러나 일부 환자분들은 다른 유방암 유형에서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본인은 왜 사용하지 못하게 하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다. 또한 민간요법을 시도하다가 간독성과 같은 부작용을 겪는 환자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고 생존기간을 연장한다고 명확히 입증된 치료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치료 병원을 자주 옮기는 것도 치료가 단절되기 때문에 환자 예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치료를 시작한 병원의 의료진들을 믿고 치료에 임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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