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 下
“1상 및 중개연구 잘 수행하며 후기 임상 기반 다져”
“韓, 타 국가 대비 연구자 주도 임상 국가 지원 적어”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개발은 지난해 제약·바이오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ADC는 유방암, 방광암, 자궁경부암 등의 고형암과 급성 백혈병, 림프종, 혈액암 등의 항암 분야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치료 효과로 주목을 받은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는 성공적인 ADC 신약 개발의 대표 사례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Frost & Sullivan’ 등에 따르면, ADC는 향후 5년간 연평균 25.4%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ADC 시장 규모는 95억 9,000달러(약 12조 6,000억원)를 기록했으며, 오는 2028년에는 285억3,000달러(약 37조 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의료진은 고도의 연구 역량을 통해 ADC 신약 개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ADC 외에도 다양한 신약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외 제약사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을 촉진하고, 환자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것.

이에 청년의사는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를 만나 글로벌 제약 산업에서 국내 임상 연구가 어떤 위상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와 의료계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들어봤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

- 작년 연말 글로벌 학술 정보 분석 업체인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한 '2023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에 선정됐다. 3년 연속으로 선정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간략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종양내과 교수님, 연구 간호사, 그리고 환자 및 보호자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 유방암분과 선후배 교수님, 임상시험에 함께한 글로벌 제약사와 서울대 암연구소 실험실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이렇게 다양한 분들에 대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이 모든 분들의 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암연구소 연구실 선생님들과 서울대 병원 내 환자에서 수립된 세포주에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을 테스트했을 때 결과가 좋으면, 한국에서도 해당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서둘러 임상시험 참여를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연구실에는 환자 유래 세포주와 동물실험에 관한 정보가 쌓이고, 어떤 환자에서 신약의 효과가 좋을지 예측할 수 있는 예측력이 생긴다. 이 덕분에 좋은 임상시험을 디자인하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임상시험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가져올 수 있고, 좋은 임상시험에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면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한국에서 좋은 임상시험을 더 많이, 더 빠르게 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NEJM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의학저널에 엔허투 임상 결과에 대한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연구 환경이 잘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2000년쯤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후보물질 단계인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닙)’ 1g을 받아 실험실에서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신약 임상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가 높아지면서 이전보다 임상시험을 가져올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됐다.

- 최근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단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신약 임상 단계에서 한국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2000년대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항암신약개발사업단 그리고 바이오 업계가 협력해 국제적으로 임상시험 분야에서 명망 있는 나라가 되자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면서 국내 임상시험의 경쟁력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2년에는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와의 규제 조화를 통해 국제 임상시험 규약을 수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신약 개발 임상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배경에는 국내 종양내과 전문의들의 높은 수준의 임상 연구 역량이 있다. 국내 종양내과 전문의들은 대부분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실 기초 연구와 임상시험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우리 실험실에서도 엔허투가 임상 파이프라인에 있던 시절부터 다이이찌산쿄를 통해 후보물질을 받아 위암 세포주와 유방암 세포주에서 DNA 손상 관련 기초 연구를 실시해 효과를 확인했으며, 그 이후 엔허투 1상에도 참여했다. 특히 1상은 사람을 대상으로는 처음 실시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임상시험 경험이 있고 실험실 기초 연구와 임상시험 연구를 잇는 중개 연구가 가능한 기관에서 맡게 된다.

즉 실험실 기초 연구와 임상시험이 모두 가능한 기관에서 1상과 중개연구를 잘 진행하고 과학적인 결과를 적절히 도출해내면, 2상 또는 3상을 추후 진행할 때에는 여러 지역 거점 병원에서도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기반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과는 연구자 혼자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수탁기관(CRO), 글로벌 제약사, 연구 간호사, 실험실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의 가치를 목표로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 국내 임상시험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가 기대되는 치료제나 질환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ADC 분야가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또 ADC에 면역치료제를 조합하는 방식의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고, 토포아이소머라아제 억제제(topoisomerase inhibitor)뿐 아니라, 튜불린 억제제(tubulin inhibitor)나 표적치료제를 약물 위치에 넣은 ADC들도 개발 중이다. ADC 분야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항체와 약물을 각각 어떤 약제를 사용해 조합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면역관문억제제에 있어 PD-1 또는 PD-L1과 같은 이미 알려져 있는 면역항체 이외에도 이중특이적 항체(bispecific antibody), 삼중특이적 항체(trispecific antibody) 등 2~3개 이상의 표적을 타깃하는 약제들도 개발되고 있어, 이런 다양한 연구들이 환자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 국내 임상시험 역량 강화가 글로벌 제약사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나.

최근 몇몇 국내 제약사에서도 ADC를 개발하고 있으며, 저분자 저해제(small molecular inhibitor)를 개발하고 글로벌 임상시험을 실시해 표준 치료법으로 등재가 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10~15년 사이 정부도 바이오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육성하려 하고 시도하고 있다.

-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굉장히 적은 편이다. 일본은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연구자 주도 임상 단체인 일본임상암연구회(JCOG)를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KCSG가 있긴 하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자는 글로벌 제약사나 정부의 적은 연구 과제를 통해 지원을 받아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있어 어려운 점이 많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서 약제는 제약사를 통해 무료로 공급을 받게 되지만, 이외 투입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다양한 검사 비용, 채혈 비용, 연구 데이터 수집을 위한 데이터 베이스 관리 비용, 연구 간호사 인건비 등 임상시험을 뒷받침하는 부분들이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있다면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 보다 활성화되고 연구자들이 임상시험에서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