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김진주 변호사

대법원이 의료소송에서 환자 측의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해 이를 소개한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는 수술 전 환자 B씨에게 전신 및 국소마취를 하고 간호사 C씨에게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도록 지시한 다음 수술실에서 나왔다. 이후 수술 중 B씨에게 저혈압 증상 등이 반복되자 간호사는 A씨에게 전화했다. A씨는 간호사에게 혈압상승제 투여를 지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다가 네 번 전화한 이후 수술실로 돌아와 환자에게 혈압상승제를 투여했다. 그러나 환자는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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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A씨가 속한 병원에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1·2심 법원은 A씨에게 진료상 과실이 인정되고 진료상 과실과 환자 사망 사이 인과관계 역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의료소송에서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에 관한 기존 법리는 환자 측에서 진료상 과실을 증명하고, 진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에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도 환자 측이 증명한 경우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 증명만으로도 인과관계 추정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환자 측이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점은 기존 법리와 동일하게 판단하면서도,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인이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A씨의 진료상 과실은 B씨의 사망을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으며 의료진 측에서 B씨의 사망이 진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지 아니하는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판례는 의료과실과 사망과 같은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함에 있어 환자 측이 ‘평소 건강했다, 지병이 없었다 또는 사망의 직접원인을 일으킬 병이 없었다’는 등 간접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판례의 개연성 법리는 위와 같은 간접사실 입증이나 증명 없어도 과실이 사망에 원인이 됐다는 가능성이나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만 하면 별도 간접사실 입증이 없어도 인과관계가 인정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환자 측 입증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다만 의료인 측은 주장을 번복할 증명을 해야 하는 수고가 늘어난 셈이다.

한편, 같은 날 같은 재판부인 대법원 1부는 A씨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업무상(진료상) 과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이 부족”함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며 금고 8개월과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2021도1833).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의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왔는데, 형사사건은 민사사건과 달리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기준이고 민사사건에서 적용한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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