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대학병원 경영 성적이 비교적 좋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병원장을 했다. 일반 병실은 수도권 병상 총량제에 걸려서 증설할 수 없지만, 중환자실을 비롯한 검사장비와 시설도 확충하고 내친김에 수도권 어딘가에 병원을 한 군데 더 낼 계획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확장, 확장.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이래도 되나’라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얼추 수도권에서 예상되는 대학병원 증설 규모가 5,000병상 정도였는데 과연 그 정도 증설을 위한 의료 인력 확보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이었다.

수년간 전공의 근무 시간이 반 토막 나고, 그나마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빈번했다. 중증 질환 쪽으로는 아예 접근도 하지 않는데다가 개원가 페이가 갈수록 급등하면서 대형병원들은 인력난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 중소병원이 이미 겪고 있던 의료 인력난이 대형병원에도 불어 닥친 것이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전공의, 전임의, 임상교수 그리고 전임교수 체제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즉 할 수 없이 채용하기 시작한 촉탁의들의 급여는 마구 치솟고, 그동안 저임금으로 혹독하게 부리던(?) 전임의, 임상교수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를 깨달으면서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전임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왜냐하면 임금 격차가 너무 심한데다가 감당해야 하는 업무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 이 상황에서 역시 낮은(?) 임금에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던 간호 인력도 더는 못 참겠다고 나서고 있다. 간호 인력은 앞으로 꾸준히 문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대형 대학병원들의 운영행태를 보면 매우 정의롭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본래 상급종합병원 취지에 맞지 않게 경증 환자를 너무 많이 수용하면서 역시 의도치 않게(?) 의료전달체계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한마디로 의료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트린 것이다. 모든 의료 인력을 흡수해 버렸고 그런 의료 인력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최소 인력을 쓰면서 급여는 너무 낮았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3시간 외래에 혼자 100명 이상 진료하고, 걸핏하면 예약 시간보다 1시간 이상을 지체하기도 했다. 돈 되는 검사와 치료 시설은 마구 확충했지만 거기에 따른 적정 인력은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병원 대부분은 자기 병원의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판독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영상 검사를 해대고 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검사장비는 꾸준히 늘렸다.

또 최소 간호 인력으로 쥐어짜듯이 병동을 돌리는 것을 경영이라고 생각했다. 빈발하는 신규 간호사의 퇴사에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병동 업무는 갈수록 증대되는데, 수시로 교체되는 신규 간호사들로 인해 환자 안전은 갈수록 불안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수익과 시설 확충에만 매진했다.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필자가 주장하기를 빨리 체질 개선을 해서 대학병원이 중증 질환 위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이제 위기가 오고 있다. 의료 쓰나미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도 아직도 보이지 않나 보다.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은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유구한 역사의 대학병원이 경영난으로 폐원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은 급여가 원활하게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잘 못 알고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대형병원들 가운데는 경영 악화, 특히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병원이 꽤 있을 것이다. 수익의 증가보다 인건비의 상승, 그리고 부족한 인력난이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늘려놓은 시설과 인력, 이 모든 것을 이대로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나, 이러다가 망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