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료원 소속 3개 병원 전체 교수 총회 개최
임춘학 비대위원장 "현 사태 해결위한 교수 의지 표명"
일괄 제출 사직서 고대의료원 총무팀에 전달

고대의료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25일 개최한 ‘고대의료원 전체 교수 총회’에 참가한 교수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청년의사).
고대의료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25일 개최한 ‘고대의료원 전체 교수 총회’에 참가한 교수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청년의사).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발하는 고려대의료원 교수들이 25일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현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의대 정원 증원을 즉각 중단하고 의료계와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고대의료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고대의료원 전체 교수 총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교수 총회에는 고대안암·구로병원·안산병원 교수들이 참석했으며 각 병원에 지정된 장소에 모인 후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총회가 열린 고대안암병원 메디힐홀에는 교수 2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총회 현장에는 전임교원과 임상교원을 위한 사직서와 ‘젊은 의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필수의료사수 의료새싹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배지가 놓여 있었다. 교수들은 해당 배지를 의사 가운에 걸었다.

임춘학 비대위원장(마취통증의학과)은 개회사를 통해 현 의료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고 밝혔다(ⓒ청년의사).
임춘학 비대위원장(마취통증의학과)은 개회사를 통해 현 의료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고 밝혔다(ⓒ청년의사).

임춘학 비대위원장(마취통증의학과)은 개회사를 통해 현 의료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임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의료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왜곡된 정보로 언론을 통해 의료계와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다”며 “그러나 고대의료원 교수들은 전국 의대 교수들과 연대해 지금의 의료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해결해야 한다는 하나 된 의지를 표명했다”고 했다

이어 “고려대의 건교 이념은 ‘교육 구국’”이라며 “나중에 학생들과 다시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올 때 어깨를 자랑스럽게 두드리며 우리와 함께 대한민국 의료를 포기하지 말고 ‘아카데믹 메디슨(Academic Medicine)’을 세우는 데 함께했다고 이야기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평재 공동비대위원장(고대구로병원 이식혈관외과)은 지난 24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대병원 안과 A교수를 언급했다. 그는 “안타깝게 우리의 동료가 과로로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 참을 수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전공의와 학생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오늘을 계기로 고대의료원 교수와 하나가 돼 서로를 지키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 후배들을 지키고자 한다면 무너진 현재의 의료 상황을 돌이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의료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도록 모든 교수들이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왼쪽부터) 고려의대 정지태 명예교수와 고대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진 교수는 정부 정책을 규탄했다(ⓒ청년의사).
(왼쪽부터) 고려의대 정지태 명예교수와 고대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진 교수는 정부 정책을 규탄했다(ⓒ청년의사).

대한의학회장을 역임한 고려의대 정지태 명예교수는 현 사태가 오기까지 정부의 잘못이 컸음에도 오히려 정부가 여론을 이용해 의료계를 호도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선배 의사로서 현 사태를 막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내가 지지했던 보수에 발등이 찍혀 가슴앓이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 없다”며 “지난 2000년 정부는 의약분업 사태를 수습하며 보건의료기본법을 제정하고 의대 정원을 줄였으며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후속 조치는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5년마다 세우기로 한 보건의료발전계획은 지난 25년간 한 번도 세운 적 없으며 잠시 올렸던 수가도 보험 재정 압박을 이유로 다시 낮췄다”며 “그러면서 의사 파업에 밀려 할 수 없이 의대 정원을 줄였다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의료 위기가 왔다는 망언을 하며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미리 막지 못해 선배 의사로서 한없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언급하면서 오히려 의사의 몸을 갈아 넣어 환자만을 위해 사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정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다”며 “2017년 조항에 따르면 ‘의사는 최고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내 자신의 건강, 행복,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내 한 몸을 갈아 넣어 오로지 환자만을 위해 사는 시대는 갔다”고 했다.

이어 “환자가 살려면 건강하고 행복한 의사를 만나야 한다. 간이침대에서 잠도 못 자면서 내 몸을 갈아 넣는다고 의학은 발전하거나 개혁되지 않는다”며 “사랑과 보살핌, 헌신에 대한 대가를 원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아무런 도움 없이 이루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교수들의 현명한 선택을 지지한다. 이 선택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고대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진 교수는 출사표를 통해 잘못된 정부 정책을 묵과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지난 한 달 동안 의료계는 권력에 의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 지성인으로서 비판적인 이성을 통해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며 “흔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개를 드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일을 묵과하고 지나간다면 이런 일들은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고개를 들을 때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고개만 들었다”고 말했다.

고대안암병원 교수들은 총회가 끝난 후 작성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곧바로 총무실로 전달됐다(ⓒ청년의사).
고대안암병원 교수들은 총회가 끝난 후 작성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곧바로 총무실로 전달됐다(ⓒ청년의사).

이날 교수들은 대국민 성명과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며 현 사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며 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비대위는 대국민 성명을 통해 환자와 국민이 겪는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의해 손상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달라. 국민을 위한 의료 현안이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정부를 향해 현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에 있음을 강조하며 의대 증원 2,000명을 각 중단하라고 했다. 비대위는 "의료 개혁이라는 근거 없는 명목으로 사람을 살릴 인재들을 떠나게 한 정부의 자가당착적 행태를 강력히 비판한다"며 “학생 교육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의대 교수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수들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제창한 후 한 줄로 서서 강당에 마련된 함에 사직서를 직접 제출했다. 수합된 사직서는 곧바로 의료원 총무실 등에 제출됐다.

고대의료원에 따르면 임상교원이 제출한 사직서의 경우 고대의료원 총무실에 제출된 후 바로 각 병원장에 전달된다. 이후 병원장이 사직서를 승인하면 바로 의료원장에게 전달된다. 전임교원의 경우 고려대 대학본부로 사직서를 제출하면 곧바로 대학 총장에게 전달된다.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한병덕 교수 등은 이날 수집된 사직서를 바로 고대의료원 총무실에 전달했다(ⓒ청년의사).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한병덕 교수 등은 이날 수집된 사직서를 바로 고대의료원 총무실에 전달했다(ⓒ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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